삼국시대의 성곽은 평지에 성곽을 두고 그 주위 산지에 산성을 따로 축성하여[平時居都 難時入保]하여 외적을 방어하는 경우가 많았다. 삼국이 서로 대치하였던 국경지방에는 많은 산성이 축성되었는데 초기엔 낮은 구릉의 산정에 둘러쌓은 테메식산성(山頂式이라고도 함)으로부터 여러개의 골자기를 포유하는 포곡식산성으로 규모가 커지면서 석축으로 쌓았다.
산성은 대개 주봉의 8부능선쯤에서 산등성이를 타고 지세가 이르는 형용을 따라 축조한 까닭에 불규칙한 蛇形을 이루고 성내 가장 높은 곳에 장대(將臺)를 두고 평지와 가까운 계류에 수구와 성문을 두었다.
산성을 축조하는 위치는 도읍이나 集落된 주거지에서 멀지않고 주요 교통로에서 가까운 주변의 산중에서 큰강하를 끼거나 천연적인 요험지를 택하되 멀리 평야를 내려다 볼 수 있는 곳에 축성하여 방어와 공격에 유리하도록 하였다.
삼국의 각 도읍지에는 평지에 있는 궁궐을 중심하여 그 외곽에 성을 둘러 도성의 면모를 갖추었다. 고구려 고도인 통구성, 국내성, 평양천도후의 평양성, 백제사비궁과 나성, 경주 월성 등이 그 예이며 그 유구가 잘 남아있다. 삼국시대의 성곽에서는 우리나라 도읍성이나 산성에 기본적으로 갖추는 성곽시설들이 이미 나타난다. 그 대표적인 예를 보면 고구려 평지도성인 국내성(압록강변 즙안소재)에는
1) 장방형 평면의 사면에 성문과 치를 고루 배치하고 성밖에 해자를 둘렀다.
2) 성문에는 옹성을 둘루고 성문에 맞추어 격자형 도로를 내었다.
3) 성벽축조단면에 규형쌍기의 모습을 보임과 성벽위에는 城堞(여담)을 둘렀던 흔
적이 보임.
특히 평양성은 산지와 평지의 자연지세가 갖는 이점을 최대로 살린 平山城으로서 內, 中, 外의 삼중성을 이루었다. 기능상으로는 내성에 왕궁을 두고 중성에는 통치집단, 외성에 주민거주와 北성에는 내성의 라성으로서 국방상 보호시설이 되었다.
외성안에는 條坊制에 의한 도시계획을 채택한 점등이 후대의 도성축조와 도시건설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고 본다.
삼국이 각각 축성한 성곽의 수는 무수히 많아 현존하는 城址의 약 70%정도가 삼국시대의 성이거나 그 유지에 재축한 것이며 이들의 대다수가 산성이고 초기에는 토성이 많았으나 삼국말쯤에서는 석성이 대부분을 점하였다. 석성에는 협축과 내탁의 두가지 공법이었는데 후자의 경우가 우리나라에 더 많은 보편적인 성곽유형이며 산성등에서는 兩型을 竝用하기도 하였다.
성의 형태는 초기의 테메식에서 포곡식으로 규모가 확장되고 양형을 중복, 절충한 복합형의 산성으로 발전하였다.
이와같이 우리나라 성곽의 기본체제가 이미 삼국시대말에 형성되어 그 후대의 축성에 귀감이 되었고 백제의 축성술은 밀본에 전파되어 대야성 등 20여개의 산성이 축조되는등 일본 고대산성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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