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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고려시대 석탑의 특징

인생은소풍.... 2012. 6. 7. 08:56

 

고려 시대의 특징

통일 신라시대 말기에 종교로 받아들여 전국적으로 불교가 활발하게 융성하였다. 따라서 우리나라 전 시대를 걸쳐 탑이 가장 많이 조성되던 시기도 바로 고려시대였으며 탑의 건립에 대한 후원자로 분열된 국토를 다시 통합하여 새로운 국가를 건국한 고려왕조는 개국 초기부터 불교를 국는 국가, 왕실, 귀족 등은 물론 일반백성들까지도 참여하여 고려시대의 탑에는 수준 높은 작품으로부터 비록 서툴지만 지방적인 특색을 드러내는 작품들까지 나타나고 있고, 탑의 형태도 일반적인 사각다층탑으로부터 다양한 이형석탑이 조성되기도 하였다.

 

고려시대의 탑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화려했던 것은 역시 목탑이었는데 지금은 남아 있는 것이 없고 다만 고려 초기의 서경구층탑, 규모가 200척이 넘었다는 광통보제사오층탑, 개국사, 혜일중광사, 진관사, 홍왕사, 민천사, 연복사 등 개성부근의 사찰에 세워진 목탑과 남원의 만복사탑 등에 대한 사실이 옛 기록들에 남아 있다. 그 중에는 이러한 목탑의 위용에 대한 내용도 간간히 실려있어 목탑은 고려시대에도 꾸준히 건립되고 있었으며 워낙 공이 많이 들기 때문인지 비교적 규모가 큰 사찰에서 주로 세워졌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고려시대 탑의 주류는 역시 석탑이다.

 

고려시대의 석탑은 신라 석탑의 전통이 강하게 영향을 미치면서 약간의 변형을 시도하여 일반화된 양식으로 성립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개성을 중심으로 새로운 석탑양식이 이루어져 전국으로 확산되는 반면 일부에서는 지방적인 색채를 드러내는 석탑이 나타나기도 하였다. 예를 들면 옛 백제지역을 중심으로 백제식의 석탑이 부활되고, 영남지방을 중심으로 하는 반도 이남의 지역에서는 통일신라 석탑의 전통이 강하게 계승된 점을 들 수 있다. 또 전체적으로는 탑에 새로운 장식이 첨가되기도 하고 여러 갈래의 이형석탑도 등장하는 등 고려시대에는 다양한 석탑양식이 전개되었다

일반형의 고려석탑은 신라석탑의 전형양식을 계승하여 평면 사각형의 2층기단 위에 다층의 탑신을 얹고 있는데 중부 이남지방에서 주종을 이루면서 약간의 변형을 가하고 있다. 대체로 기단과 탑신은 신라 석탑에 비하여 폭이 좁아지고 탑신은 층수가 많아져 전체적으로는 길쭉한 형태를 취하고 있는데, 탑신 밑에 별도의 판석을 삽입하기도 하고 어떤 탑은 기단 위아래로 연꽃무늬를 돌려 마치 불상대좌와 같은 모습을 이루기도 한다. 또 지붕돌은 두껍고 처마가 네 귀에서 위아래가 모두 곡면으로 들리며 일부의 탑에서는 기단도 단층으로 생략되는 경우가 있다.

 

그리하여 신라 석탑에서 보여주는 당당한 느낌은 줄어들고 비록 유연한 감은 있으나 대부분 늘씬한 형태를 이루어 안정감이 적다. 대표적인 탑으로는 경북 예천의 개심사지오층석탑, 충남 청양의 정산서정리구층석탑, 강원도 강릉의 신복사지삼층석탑,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겨 온 경기도 개성의 남계원칠층석탑과 경북 칠곡의 정도사지오층석탑, 그리고 전북 김제의 금산사오층석탑 등을 들 수 있으며 이 밖에도 수많은 고려시대의 석탑이 이 범주에 속하면서 전국적인 분포를 보이고 있다.




개심사지 오층석탑(11세기)


석탑양식의 전개

신라의 석탑은 비록 이형석탑이 존재하였지만 대체로 일반형 석탑이 주류를 이루는 일률성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고려시대에 들어서는 사찰의 조영과 불탑의 건립에 왕궁 귀족뿐만아니라 토착세력의 참여도 높여져서 고려사회의 새로운 성격이 부각되는 10세기 후반부터는 석탑에서도 새로운 조형의 변화가 일어나게 된다.

 

 첫째로 고려시대에는 석탑이 지방적인 양식을 현저하게 드러내고 있다. 이를테면 영남지방에서는 신라식의 석탑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반면에 옛 백제지역에서는 백제식의 석탑이 일부 부활되고 있으며 개성을 중심으로 한강 이북지방에서는 고구려 탑의 전통과 중국불탑의 영향으로 다각 다층석탑이 성행한다는 것이다. 백제계의 고려석탑으로는 전북 익산의 왕궁리 오층석탑을 비롯하여 충남 부여의 장하리 삼층석탑과 무량사 오층석탑, 충남 서천의 비인 오층석탑, 공주의 계룡산 남매탑, 전북 김제의 귀신사 삼층석탑과 옥구의 죽산리삼층석잡, 전남 강진의 월남사지모전석탑 전남 진도의 금골산 오층석탑등을 들수 있으며 이러한 탑들은 백제때 세워진 익산미륵사지 다층석탑이나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을 모델로 하고 있다




               왕궁리 오층석탑(백제계 석탑 양식에 신라탑의 형식이 일부 어우러진 고려 전기 석탑)

 

다각다층석탑으로는 강원도 오대산의 월정사 팔각구층탑을 비롯하여 평남 대동군의 원광사지 육각칠층석탑과 율리 사팔각 오층석탑, 평안북도 영변의 보현사 팔각십삼층석탑, 그리고 평양 영명사와 광명사의 팔각오층석탑 등을 꼽을 수 있다. 이 탑들은 한결같이 기단부에 무늬장식을 하고 위아래로 연꽃무늬를 베풀어 기단을 불상대좌와 같은 형태로 꾸미고 있으며 탑신부는 5층 이상을 올려 다각다층의 길쭉한 형태를 이루고 있다. 아울러 이탑들은 한강 이북 중에서도 평양 부근에 집중 분포하고 있는 것이 지역적인 특색이다.

 

 

 

                                    월정사 팔각구층탑(북쪽 지방에 주로 유행했던 고려 초기 다각다층석탑)

이밖에도 지역적이지만 전남 광주일대, 강원도 춘천 일대 등지에서도 소규모적인 지방양식의 석탑이 조사되었고 앞으로도 지속적인 연구조사가 이루어진다면 더욱 많은 지방양식 석탑의 계보가 찾아질 것이다. 이러한 지방양식의 석탑이 조성되는 배경은 뚜렷이 밝혀지지 않고 있지만 신라석탑의 조형이 이미 쇠잔해진 가운데 각 지방의 우수한 석탑의 여파가 시대를 불문하고 지방양식의 모델로서의 영향을 미치거나 토착세력의 부각에 따른 새로운 형식의 고안, 또는 복고풍 석탑에 대한 향수가 특이한 지방양식의 석탑과 백제식 및 고구려식의 다각다층탑의 재현을 부러 일으켰다고 추정되기도 한다.

둘째로 고려시대에는 다양한 갈래의 이형석탑이 조성되는데 이중에는 신라시대의 화엄사 사사자삼층석탑의 전통을 이은 것도 있지만 새로이 흑색 점판암을 사용한 이른바 청석탑이 유행하기도 하고 탑신의 층층마다 괴임돌을 삽입하는 기법과 탑신 전체에 불보살상이나 여러 가지무늬를 새기는 기법이 새로이 나타나며, 상륜부의 특수형식이 등장하기도 하고 이밖에 전혀 새로운 양식의 석탑이 발생하는 등 이형석탑에도 다양한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 주목된다. 즉 화엄사 사자삼층석탑을 모델로 한 고려의 이형석탑은 충북 월악산의 사자빈신사지 다층석탑과 강원도 홍천 괘석리 사사자삼층석탑을 들수 있다.


 

 

 

 

 

              사자빈신사지 석탑(11세기, 통일신라시대의 화엄사사사자삼층석탑(국보 제35호)을 모방한 석탑)

 

청석탑은 전북 김제의 금산사 육각다층석탑, 강원도 영월의 무릉리 다층석탑, 충북 충주의 창룡사 다층석탑 등으로 세밀한 조각을 곁들일 수 있는 장점은 있으나 재질이 연하여 소규모의 탑재로서만 가능하고 또한 파손되기 쉬워 지금까지 완형으로 남아 있는 작품은 없다. 청석탑의 건립은 이미 신라시대의 해인사 원당암 다층석탑에서 그 시원을 볼 수 있는 데 본격적으로 조성되는 것은 고려시대부터이다. 강릉 신복사지 삼층석탑, 남원 만복사지 오층석탑, 경복궁의 홍제동 오층석탑등에서는 탑신의 층층마다 괴임돌을 삽입하고 있으며, 통일신라시대에 조성된 남원의 실상사 백장암 삼층석탑에서 처음으로 나타나는 탑신 전체에 인물상과 무늬를 새겨넣는 기법은 고려시대에 들어 개성부근의 현화사 칠층 석탑, 원광사지 육각칠층석탑 등에 계승되고 경천사지 십층 석탑(현 국립중앙박물관)에 이르러서는 화려함이 극에 다다르고 있다.


                                                        경천사 10층석탑(현 용산국립중앙박물관)

[국보 제86호인 경천사 10층 석탑(높이 13.5m)이 10년간의 이전.복원 작업이 완료돼 10월 28일 개관하는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전시장 동관(1층) '역사의 길'에 아름다운 자태를 드러냈다.]

 

 

경천사는 경기도 개풍군 광덕면 부소산에 있던 절로, 고려시대 전기에 세워졌던 것으로 보인다. 경천사지에 세워져 있었던 이 탑은 일제시대인 1907년 일본 궁내대신 다나카 미쓰야키(田中光顯)에 의해 일본으로 밀반출됐다가 1918년 반환되는 등 수난을 겪었다. 이 과정에서 많은 부위가 훼손돼 60년 시멘트로 복원해 경복궁 안에 재건됐으나 산성비 등으로 망가져 95년부터 20억여원을 들여 보존처리를 끝내고 2005년 3월 28일부터 새 중앙박물관으로 옮겨져 4개월여 만에 제모습을 찾았고 1960년에 경복궁으로 옮겨 세워 놓았다. 3단으로 된 기단(基壇)은 위에서 보면 아(亞)자 모양이고, 그 위로 올려진 10층의 높은 탑신(塔身) 역시 3층까지는 기단과 같은 아(亞)자 모양이었다가, 4층에 이르러 정사각형의 평면을 이루고 있다.

 

기단과 탑신에는 화려한 조각이 가득 차 있는데, 부처, 보살, 풀꽃무늬 등이 뛰어난 조각수법으로 새겨져 있다. 4층부터는 각 몸돌마다 난간을 둘렀으며, 지붕돌은 옆에서 보아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 형태에 기왓골을 표현해 놓는 등 목조건축을 연상케 하는 풍부한 조각들을 섬세하게 새겨 놓았다. 또한 탑의 1층 몸돌에 고려 충목왕 4년(1348)에 세웠다는 기록이 있어 만들어진 연대를 정확히 알 수 있다.

 

새로운 양식의 석탑이 많이 출현했던 고려시대탑으로서도 특수한 형태를 자랑하고 있으며, 우리나라 석탑의 일반적 재료가 화강암인데 비해 대리석으로 만들어졌다는 점도 특이하다. 전체적인 균형과 세부적인 조각수법이 잘 어우러진 아름다운 자태로 눈길을 끌며, 지붕돌의 처마가 목조건축의 구조를 그대로 나타내고 있어 당시의 건축양식을 엿볼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된다. 이러한 양식은 이후 조선시대에 이르러 원각사지십층석탑(국보 제2호)에 영향을 주기도 하였다.

 

 

 

                                                         공주 마곡사 오층석탑

 

 

 

                                                             김제 금산사 오층석탑

 

 

                                                     여주 신륵사 다층전탑 

 

 

 

                                                           동국대 박물관에 소장된 보협인석탑

 

 

아울러 고려말기에 들어 공주 마곡사 오층석탑, 김제 금산사 오층석탑, 여주 신륵사 다층전탑, 경복궁의 경천사지 십층석탑등의 상륜부가 이국적인 스타일로 등장하여 전남 화순의 운주사에는 한 사찰에 수십개의 석탑이 조성되는 가운데 탑신에 꽃무늬, x자무늬, 마름모무늬 등 전혀 생소한 무늬가 장식되고 원형 다층석탑, 계란형 다층석탑 등도 세워진 특수한 예를 보이고 있다. 또 하나의 고려석탑의 특수한 예로 경천사지십층석탑을 빼 놓을수 없다. 이탑은 고려말기인 충목왕 4년(1348)에 세워진 것으로 평면이 사면 돌출형인 기단을 3단으로 쌓고 탑신은 3층까지는 사면 돌출형을 유지하다가 4층부터는 사각형으로 바뀌었으며 상륜부는 사각형의 돌기둥형으로 마감하고 있다. 흰대리석을 재료로 하여 기단으로부터 탑의 꼭대기에 이르기까지 온통 불보살, 신중, 운룡, 초화, 동물등을 표면에 새겨넣고, 탑신에는 층마다 난간을 설치하였으며 지붕은 목조건물의 온갖 부재를 세밀하고도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어 탑 전체가 목조건물을 방불케하여 석탑이면서도 대작의 석조 공예품을 대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고려시대 석탑장엄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다. 이밖에는 동국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된 보협인석탑, 경북 서산의 고리사석탑, 그리고 계단형식의 금산사사리탑 등도 고려시대 특수형식의 귀중한 석탑으로 남아 있으며 호암미술관 소장의 금동대탑은 고려시대에 많이 만들어진 공예탑 중에서 규모가 가장 큰 작품으로 유명하다.

'생의 한가운데에서' 퍼온 글과 사진입니다. 

출처 : 황세옥의 전통건축이야기
글쓴이 : 황세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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