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심사지 오층석탑(11세기)
석탑양식의 전개
신라의 석탑은 비록 이형석탑이 존재하였지만 대체로 일반형 석탑이 주류를 이루는 일률성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고려시대에 들어서는 사찰의 조영과 불탑의 건립에 왕궁 귀족뿐만아니라 토착세력의 참여도 높여져서 고려사회의 새로운 성격이 부각되는 10세기 후반부터는 석탑에서도 새로운 조형의 변화가 일어나게 된다.
첫째로 고려시대에는 석탑이 지방적인 양식을 현저하게 드러내고 있다. 이를테면 영남지방에서는 신라식의 석탑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반면에 옛 백제지역에서는 백제식의 석탑이 일부 부활되고 있으며 개성을 중심으로 한강 이북지방에서는 고구려 탑의 전통과 중국불탑의 영향으로 다각 다층석탑이 성행한다는 것이다. 백제계의 고려석탑으로는 전북 익산의 왕궁리 오층석탑을 비롯하여 충남 부여의 장하리 삼층석탑과 무량사 오층석탑, 충남 서천의 비인 오층석탑, 공주의 계룡산 남매탑, 전북 김제의 귀신사 삼층석탑과 옥구의 죽산리삼층석잡, 전남 강진의 월남사지모전석탑 전남 진도의 금골산 오층석탑등을 들수 있으며 이러한 탑들은 백제때 세워진 익산미륵사지 다층석탑이나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을 모델로 하고 있다

왕궁리 오층석탑(백제계 석탑 양식에 신라탑의 형식이 일부 어우러진 고려 전기 석탑)
둘째로 고려시대에는 다양한 갈래의 이형석탑이 조성되는데 이중에는 신라시대의 화엄사 사사자삼층석탑의 전통을 이은 것도 있지만 새로이 흑색 점판암을 사용한 이른바 청석탑이 유행하기도 하고 탑신의 층층마다 괴임돌을 삽입하는 기법과 탑신 전체에 불보살상이나 여러 가지무늬를 새기는 기법이 새로이 나타나며, 상륜부의 특수형식이 등장하기도 하고 이밖에 전혀 새로운 양식의 석탑이 발생하는 등 이형석탑에도 다양한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 주목된다. 즉 화엄사 사자삼층석탑을 모델로 한 고려의 이형석탑은 충북 월악산의 사자빈신사지 다층석탑과 강원도 홍천 괘석리 사사자삼층석탑을 들수 있다.
사자빈신사지 석탑(11세기, 통일신라시대의 화엄사사사자삼층석탑(국보 제35호)을 모방한 석탑)
경천사 10층석탑(현 용산국립중앙박물관)
[국보 제86호인 경천사 10층 석탑(높이 13.5m)이 10년간의 이전.복원 작업이 완료돼 10월 28일 개관하는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전시장 동관(1층) '역사의 길'에 아름다운 자태를 드러냈다.]
경천사는 경기도 개풍군 광덕면 부소산에 있던 절로, 고려시대 전기에 세워졌던 것으로 보인다. 경천사지에 세워져 있었던 이 탑은 일제시대인 1907년 일본 궁내대신 다나카 미쓰야키(田中光顯)에 의해 일본으로 밀반출됐다가 1918년 반환되는 등 수난을 겪었다. 이 과정에서 많은 부위가 훼손돼 60년 시멘트로 복원해 경복궁 안에 재건됐으나 산성비 등으로 망가져 95년부터 20억여원을 들여 보존처리를 끝내고 2005년 3월 28일부터 새 중앙박물관으로 옮겨져 4개월여 만에 제모습을 찾았고 1960년에 경복궁으로 옮겨 세워 놓았다. 3단으로 된 기단(基壇)은 위에서 보면 아(亞)자 모양이고, 그 위로 올려진 10층의 높은 탑신(塔身) 역시 3층까지는 기단과 같은 아(亞)자 모양이었다가, 4층에 이르러 정사각형의 평면을 이루고 있다.
기단과 탑신에는 화려한 조각이 가득 차 있는데, 부처, 보살, 풀꽃무늬 등이 뛰어난 조각수법으로 새겨져 있다. 4층부터는 각 몸돌마다 난간을 둘렀으며, 지붕돌은 옆에서 보아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 형태에 기왓골을 표현해 놓는 등 목조건축을 연상케 하는 풍부한 조각들을 섬세하게 새겨 놓았다. 또한 탑의 1층 몸돌에 고려 충목왕 4년(1348)에 세웠다는 기록이 있어 만들어진 연대를 정확히 알 수 있다.
새로운 양식의 석탑이 많이 출현했던 고려시대탑으로서도 특수한 형태를 자랑하고 있으며, 우리나라 석탑의 일반적 재료가 화강암인데 비해 대리석으로 만들어졌다는 점도 특이하다. 전체적인 균형과 세부적인 조각수법이 잘 어우러진 아름다운 자태로 눈길을 끌며, 지붕돌의 처마가 목조건축의 구조를 그대로 나타내고 있어 당시의 건축양식을 엿볼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된다. 이러한 양식은 이후 조선시대에 이르러 원각사지십층석탑(국보 제2호)에 영향을 주기도 하였다.
공주 마곡사 오층석탑
김제 금산사 오층석탑
여주 신륵사 다층전탑
동국대 박물관에 소장된 보협인석탑
아울러 고려말기에 들어 공주 마곡사 오층석탑, 김제 금산사 오층석탑, 여주 신륵사 다층전탑, 경복궁의 경천사지 십층석탑등의 상륜부가 이국적인 스타일로 등장하여 전남 화순의 운주사에는 한 사찰에 수십개의 석탑이 조성되는 가운데 탑신에 꽃무늬, x자무늬, 마름모무늬 등 전혀 생소한 무늬가 장식되고 원형 다층석탑, 계란형 다층석탑 등도 세워진 특수한 예를 보이고 있다. 또 하나의 고려석탑의 특수한 예로 경천사지십층석탑을 빼 놓을수 없다. 이탑은 고려말기인 충목왕 4년(1348)에 세워진 것으로 평면이 사면 돌출형인 기단을 3단으로 쌓고 탑신은 3층까지는 사면 돌출형을 유지하다가 4층부터는 사각형으로 바뀌었으며 상륜부는 사각형의 돌기둥형으로 마감하고 있다. 흰대리석을 재료로 하여 기단으로부터 탑의 꼭대기에 이르기까지 온통 불보살, 신중, 운룡, 초화, 동물등을 표면에 새겨넣고, 탑신에는 층마다 난간을 설치하였으며 지붕은 목조건물의 온갖 부재를 세밀하고도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어 탑 전체가 목조건물을 방불케하여 석탑이면서도 대작의 석조 공예품을 대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고려시대 석탑장엄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다. 이밖에는 동국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된 보협인석탑, 경북 서산의 고리사석탑, 그리고 계단형식의 금산사사리탑 등도 고려시대 특수형식의 귀중한 석탑으로 남아 있으며 호암미술관 소장의 금동대탑은 고려시대에 많이 만들어진 공예탑 중에서 규모가 가장 큰 작품으로 유명하다.
'생의 한가운데에서' 퍼온 글과 사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