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농촌의 일상 ‘영개엮기’와 ‘지붕이기’
옛적 외동읍(外東邑)에서는 겨울 문턱에 다다르면 집집마다 초가(草家)지붕 갈이를 하느라 분주했었다. 초가(草家)지붕은 열전도율(熱傳導率)이 낮아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포근한 소박(素朴)한 건축재료(建築材料) 중 하나였다.
그리고 그 지붕 위에는 달덩이처럼 둥근 박이 탐스럽게 여물어 가고, 건조시키기 위해 널어놓은 빨간 고추가 햇볕을 받아 더욱 붉게 타들어 가는 정겨운 풍경을 이루기도 했었다.
가을걷이가 끝나면 새 볏짚으로 이엉을 엮어 지붕을 이고, 창호지(窓戶紙)도 새로 바른다. 이엉은 초가(草家)지붕 전체를 덮어 주는 짚 묶음으로 지역에 따라 ‘영애’, ‘날개’, ‘새’, ‘개초’라고도 한다. 필자가 살던 경주(慶州) 지방에서는 ‘영개’라고 불렀다.
'영게' 엮기행사
이엉을 엮고 지붕을 이는 일은 그리 쉽지가 않다. 때문에 동네 남정네들이 함께 모여 품앗이로 '이엉 엮기'를 했다. 마당에 모여 함께 '이엉'을 엮어 지붕을 이는 날이면 주인집에서는 새참으로 국수를 삶거나 막걸리와 술국을 차려낸다.
묵은 지붕 걷어내기
이렇게 해서 노르스름한 '이엉'으로 단장된 초가(草家) 집은 북풍(北風)이 무섭지 않을 만큼 포근하고 넉넉해진다.
지붕이기
필자도 1962년 경기도로 이주하기 전까지 해마다 고향집 마당 양지(陽地)쪽에 짚단으로 바람막이를 만들어 놓고, 선친과 필자의 동료(同僚)들이 품앗이로 옹기종기 모여 앉아 차가운 날씨에 손을 호호 불어가며 '이엉'을 엮어 봤다.
'이엉' 엮는 법은 선친에게서 틈틈이 배웠다. 하늬바람이 몰아치는 추위는 막걸리와 짓궂은 동료(同僚)들의 구수한 입담으로 녹이기도 했다.
'이엉'은 무엇보다 짚을 고르게 잡는 것이 중요하다. '이엉' 굵기가 다르면 지붕모양이 매끄럽지 못하고, 가는 부분은 빨리 썩어 빗물이 새기도 한다. '이엉' 한 장의 길이는 5m 정도, 한 켜 한 켜 지붕을 덮는데 웬만한 초가(草家)지붕 하나에는 70여장이 필요하게 된다.
'이엉'으로 초가(草家)를 모두 덮은 후에는 지붕꼭대기 가운데 부분을 '용마름'으로 마무리해 준다. 짚을 삼각형으로 엮어 씌워 빗물이 잘 흐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용마름'(용마루) 엮기
‘이엉’은 우리나라 서민가옥(庶民家屋)의 대표적인 지붕재료로 짚, 풀잎, 억새 등으로 엮어 만든다.
이들은 줄기의 단면이 둥글고 곧바르며 표면이 매끄럽고, 흡수력(吸收力)이 약하며, 속이 비어 가벼운 장점이 있다. 필자네의 경우는 안채의 지붕을 주로 ‘억새’로 엮은 '이엉'으로 이었다.
추수를 마친 후 ‘먼산’까지 가서 베어 모아둔 ‘억새’로 '이엉'을 만든 것이다. ‘억새 이엉'은 짚으로 만든 '이엉'보다 수명이 길고 미관이 좋았다.
지붕 이엉의 재료 '억새풀'
'이엉'의 종류로는 모양이 고기비늘과 같고 '이엉'에 턱이 지는 형태의 '비늘이엉', 초가(草家)에 가장 흔히 쓰였던 방법으로 짚 뿌리 쪽이 밖으로 노출되지 않아서 지붕면이 매끄럽게 되는 '사슬이엉', 그리고 기본적으로는 '사슬이엉'과 같은데 '이엉'을 엮지 않고 직접 이는 '흐른 이엉' 등이 있다.
'비늘이엉'은 '사슬이엉'보다 짚이 덜 썩어서 수명(壽命)은 길지만 지붕 '물매'가 급하지 않으면 빗물이 잘 흘러내리지 않는 단점이 있었다.
'비늘 이엉'의 이름은 그 모양이 물고기의 비늘을 닮은 데에서 온 것으로 짚의 '수냉이'를 한 뼘 정도 밖으로 내어서 엮는 방법이다.
길게 엮은 날개 두 장을 '이엉꼬챙이'로 꿰어 올린 다음, 지붕의 앞뒤를 덮고 남은 부분으로 좌우 양쪽의 벽을 가릴 수 있다. 수명(壽命)은 '사슬이엉'보다 오래 간다.
'사슬이엉'은 '수냉이'가 밖으로 나오지 않도록 일정한 크기로 엮은 날개 수십 장을 둥글게 말아서 지붕위로 올린 뒤에, 멍석을 펴듯이 펴 나가면서 지붕을 덮는 방법이다. 처음에는 '수냉이'가 처마 밑으로 오도록 깔고, 다음에는 이와 반대로 하여 덮어나간다.
'사슬이엉'으로 이으면 지붕의 표면(表面)이 매끈하며, 바람에 날리지 않도록 적당한 간격을 두고 새끼를 늘여 서까래 끝에 잡아맨다. 우리나라의 서북지방(西北地方)에서는 주로 '비늘이엉'으로 그리고 나머지 지역에서는 '사슬이엉'으로 덮었다.
이렇게 '이엉'으로 지붕을 덮은 뒤에는 용마루에 '용구새'를 얹어서 마무리를 짓는다. ‘용구새’는 빗물이 잘 흘러내리게 좌우양쪽으로 비탈이 지도록 솜씨 있게 엮어야 한다.
또 바람이 심한 데에서는 바람에 날리는 것을 막기 위해 새끼를 그물처럼 엮어서 덮는다. 필자네는 주로 ‘사슬이엉’을 이었다. '억새'로 '사슬이엉'을 이면 2년 또는 3년까지 새로 지붕을 이지 않아도 될 만큼 튼튼했었다. 때문에 당시의 시골에서는 지붕을 인 집도 있고, 이지 않은 집도 있었다. '영개'의 소재에 따라 해마다 이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격년제로 이던 초가 지붕들
'이엉'은 지붕의 재료로서 시공(施工)의 편리성, 보온(保溫)과 단열(斷熱), 재료를 쉽게 구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온돌구조와 함께 서민가옥의 대표적 양식으로 정착되어 왔으나, 산업화(産業化), 도시화(都市化)가 진전되면서 농촌주택 개량사업 등에 밀려 지금은 모두 사라졌다.
우리나라에서 볏짚을 언제부터 지붕에 덮기 시작했는지 단정적(斷定的)으로 말할 수는 없으나, 벼농사가 시작된 삼국시대(三國時代)에 이미 이것을 사용했으리라고 추측이 된다.
볏짚은 속이 비었기 때문에 그 안의 공기가 여름철에는 내리쬐는 햇볕을 감소시키고, 겨울철에는 집안의 온기(溫氣)가 밖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아준다. 폭설이 내리는 한겨울이면 오히려 보온효과가 더해 지기도 한다. 그리고 겉이 비교적 매끄러워서 두껍게 덮지 않아도 빗물이 스며들지 않고, 눈이 녹아도 바로 흘러내려 언제나 건조한 상태를 유지하기도 한다.
노란 '영게'로 새로 인 초가집 지붕에 눈이 쌓인 모습
또 초가(草家)지붕은 짚 자체가 지닌 성질 때문에 따뜻하고 부드럽고 푸근한 느낌을 주며, 한 해에 한 번씩 덧덮어 주므로 지붕에 각별한 치장(治粧)을 하지 않아도 거의 언제나 밝고 깨끗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지붕의 '물매'는 매우 완만(緩慢)하기 때문에 농가(農家)의 마당이 좁을 때에는 고추 따위의 농작물(農作物)을 널어 말리며, 천둥호박이나 흰박의 덩굴을 올려서 지붕을 밭의 일부로 사용하기도 했다.
초가지붕에 올린 흰박줄기
따뜻하고 부드럽고 푸근한 초가지붕이 그 지붕마다 얽혔던 따사로웠던 인정과 함께 사라져 버린 것이 여간 아쉽지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