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2.3 고려시대 성곽
고려시대의 성곽은 山城과 坪地城의 절충형인 坪山城이 많았다.
이는 지방소읍들이 대개 배후의 산을 의지 도읍을 형성한 까닭에 그 지형을 따라 축성한 자연발생적으로 이루어진 특성이다. 축성재료로 보아서는 석성보다 토성이 더 많았고 축조양식이나 기법은 전대의 것을 그대로 준용, 독자적으로 발전된 축성술은 별로 발견되지 않는다. 다만 장성의 출현과 읍, 鎭城등의 활발한 축조가 이 시대 성곽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고려는 개국이래 줄곧 북방에 여러 산성과[鎭. 堡]성을 구축하고 동해안에도 여진과 외관에 대비한 진, 營城을 설치하였으나 거듭되는 외침을 막고져 기존의 성진을 보강연속하여 천리장성을 완성했다. 이 성은 서쪽 압록강구로부터 동해안 안평에 이르기까지 약 천여리에 걸쳐 평지에선 석성으로 山嶺에서는 토축으로 내외隍을 만들며 쌓았다. 성벽의 축조수법은 삼국시대의 축조기법을 그대로 보이며 이 장성은 고려시대 축성의 대표라 칭하고 있다.
도성이었던 개성은 당초 옛 작은 궁성에 불과하였던 것을 현종때에 羅城이 축조되고 려말에 다시 內城을 쌓았다. 몽고 침입시에는 한때 강화에 천도하여 강화도에 내, 중, 외 삼중성을 토축으로 쌓고 居都하였었는데 이 基地를 따라 조선시대에 다시 석성을 축조하였다. 고려시대에는 초기에 북방 주진성을 비롯 려말에도 연해안 지방에 읍성축조가 활발하였는데 이때의 읍성은 대개 규모가 적고 토성이 많았다. 개성을 비롯한 도읍성의 축조에선 통일신라때부터 내려온 [風水地理思想]과 우리나라 전통적인 [防禦築城의 槪念]에 의거 擇地와 點定이 행해지고 려말에 와서는 [地理圖讖說]과 [延基思想]의 대두로 개성에서의 여러 보수공역과 함께 삼경의 궁성수축이 계속 되었다.